마음에 부담이 가득 차 있었다. 지금껏 키우던 돼지를 도축장에 데려가는 일이며, 또 그 돼지가 고기가 되어 돌아와 그걸 손질하는 일,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 등 앞으로 해야 하는 모든 일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3년 전 ‘자연양돈’을 하겠다며 거창한 계획서를 써서 후계농업경영인에 신청했다. 그 뒤 축사를 짓고, 돼지를 데리고 오고, 정육점을 직접 지으며 여러 계절을 보냈다. 지난 3년 동안 생전 처음으로 겪는 일들이 수백 가지는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아무리 열심히, 잘했다 하더라도 판매를 못 한다면 모두 허사다.
그랬다. 판매는 모두의 걱정이었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더러는 혀를 차며 ‘그게 될까?’하는 식의 비아냥도 했다. 혼자만 아는 비밀처럼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어 팔아라’고 하는 조언이 가장 많았다.
인터넷에는 쇼핑몰이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쇼핑몰을 만든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돈도 많이 들어가고, 관리하는데 품도 많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통과 소매 단계에서 이윤이 많이 나고, 돼지를 경매로 내놓아서는 생산비도 남지 않으니 꼭 온라인 직거래를 해야만 했다.
천만다행인 것은 어릴 때부터 PC를 만지며 자란 세대라 인터넷 쇼핑몰에 대한 큰 부담은 없었다. 이미 ‘워드프레스’라는 무료 홈페이지 툴을 가지고 블로그를 꾸준히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쇼핑몰 기능을 추가하면 됐다. 조금 더 멋지게 꾸미려 유료 플러그인을 추가 구매하는데 돈이 조금 들어갔다. 다만, 워드프레스는 영어권 국가에 최적화가 되어있어 오픈하자마자 에러 사례가 쏟아졌다. 조금씩 해결하는 중인데 머리가 아프긴 하다.
쇼핑몰의 핵심은 사진이다. 프로작가를 불러다 찍는다면 어마어마하게 돈이 들어가는 분야다. 이건 천만다행보다 조금 더 다행이었다. 어릴 적부터 사진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어서 최고의 사진은 아니더라도 그럴듯한 사진은 자신 있었다. 홈페이지의 배경이 되는 사진과 고기상품 사진을 적당하게 찍었다. 서툰 고기손질이 문제이긴 했다.
소프트한 일들이 어느 정도 지나간 뒤에는 매우 하드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돼지를 도축장에 데리고 가는 일이다. 일반적인 농장에서는 좁은 복도로 먼저 유도한 뒤 빨간색 돼지몰이 판이나 전기 충격봉을 써서 계류장까지 몰아넣는다. 그 와중에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돼지는 고통 속에서 생이 끝난다. 돼지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같아도 최소한 도축장까지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었다.
우리 축사는 일반적인 형태와 다르게 방 한 칸이 매우 크다. 합법적인 틀 내에서 방목의 효과를 누리고 싶었다. 큰 돼지를 기르는 칸은 두 칸인데 한 칸은 60평가량, 다른 한 칸은 50평 정도 된다. 이렇게 크게 만든 것까지는 보기도 좋고, 돼지들에게도 좋은 환경이었다. 그런데 2~30마리의 돼지 중에서 두 세 마리만 차에 태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돼지들은 겁이 많은 데다 힘도 엄청나게 세다.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덤벼들면, 생각만 해도 무섭다.
어느 날 ‘평소에 익숙하던 공간이 이동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 스트레스 없이 도축장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도축장에 가는 차량을 아예 계류장처럼 쓰려고 했다. 차량 짐칸에 늘 밥을 놓아두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문제는 화물차를 다른 용도로도 많이 써야 했으므로 불가능한 얘기였다.
결국 아내와 머리를 맞대어 생각해낸 것은 나무 데크로 된 계류장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따로 강요하지도 않았건만 만들자마자 들어와 쉬었다. 특별한 공간이었기에 가장 높은 서열, 가장 큰 돼지들이 올라왔다. 뜻하지 않은 추가 성과였다.
실제로 첫 출하 때도 마찰 없이 차에 태웠다. 돼지들은 뭣도 모르고 차에 올랐다가 문을 닫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평소엔 어디에 갇히면 극도로 흥분해서 빠져나가려 애쓰는 데 반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기준 속도 이하로 최대한 천천히 도축장까지 이동했다. 미안한 마음에 도축장에 내려놓고 머리를 잠깐 숙였다.
다음 단계는 고기손질 즉 정육이었다. 발골 교육은 받았어도 정육 교육은 못 받았다. 책과 인터넷으로 열심히 공부는 했는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라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평소 부위별로 많이 먹어보았다면 감이라도 잡으련만 ‘삼겹살’, ‘목살’이 전부인 나에게 돼지 한 마리는 높은 산이었다.
부담이 너무 커 장모님께 SOS를 보냈다. 지금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돌볼 목적으로 누군가에게 부탁한 적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혼자서 불가능이었다. 자료들을 살펴보고, 영상을 뚫어져라 봐도 머릿속은 여전히 백색이었다. 아내 유하가 꼭 필요했다.
그런 와중에 아내는 첫 정육 작업을 하기 전 청소를 하다가 왼팔이 살짝 찢어졌다. 냉장육절기를 청소하기 위해 칼날을 가리고 있는 보호장치들을 분해한 상태에서 주변을 닦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그 날은 첫 판매를 앞두고 사진을 찍기로 한 날이었다. 함께 병원에 다녀와서도 쉴 수가 없었다. 혼자서라도 일을 해야 했다. 역시나 커다란 고깃덩어리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다.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가며 그럴싸한 모양을 만들어 사진 작업을 겨우 끝냈다.
다음날 장모님께서 오셨고, 아내도 팔에 방수조치까지 한 뒤 다음 작업을 함께했다. 어라? 한 번도 안 해본 것은 분명하고, 비건 채식까지 하며 육식을 멀리하던 아내의 손놀림이 심상치 않았다. 아내에게 ‘어떻게 고기 손질을 할 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받는 사람이 요리하는 걸 생각하면서 손질하는 거지”란 답이 돌아왔다. 정육점 운영의 주도권이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나는 아내를 돕고, 아내는 나를 이래라저래라 시키고 있었다. 나보다 손놀림이 좋은 게 확인된 이상 바짝 엎드렸다.
쇼핑몰에 그럴싸한 사진을 걸고, 카드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고는 바로 홍보에 나섰다. 평소에 활동하던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으련만 ‘친구’도 별로 없는 SNS가 다였다. 과연 호응을 해줄까 반신반의하며 나는 페이스북에 아내는 인스타그램에 홍보글을 올렸다.
3년간의 준비과정을 지켜본 ‘친구’들의 ‘좋아요’와 댓글, 공유는 물론이고 응원 주문이 이어졌다. 애니멀피플의 독자들도 주문을 해주셨다. 연재 글을 접하고 SNS에 친구를 맺은 분들이었다. 사실 애니멀피플에 연재를 시작한 뒤 여러 차례 구매문의가 있었지만, 기약 없는 약속을 했었다. 오랜 기간을 잊지 않고 있다가 주문해주신 것이다. 감동이었다.
첫 주문, 첫 발송은 물에 빠진 기분으로 겨우겨우 해냈다.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힘들고, 어렵고, 많은 시간이 들었다. 주문이 안 들어오면 어쩌나 걱정했던 건 기우였다. 택배차가 떠나는 시간 전까지 혼신의 힘을 다했다. 첫 발송을 망칠 수는 없었다. 다섯 시 반까지는 택배사무실에 도착하라고 했었는데 여섯 시가 다되어 겨우 도착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판매만 시작하면 다 해결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판매가 역시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어떻게 하면 우리 농장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든 부위를 골고루 판매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아내는 불 앞에서 사골을 끓이고, 불고기 양념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