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가 막히는 경험을 한 뒤, 얼마 못가 도로는 더 넓어지고 차량소통량도 많아져 델리에 다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대도시라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그 큰 도로가 수많은 차량들로 정체되었다. 교차로까지는 수백미터에 불과했는데 한시간이나 걸려 지나칠 수 있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틈틈이 메꾸고 있는 까닭에 작은 몸집임에도 불구하고 빠져나갈 수 없었다.
정체 덕에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델리 시내로 접어들었다. 어두워지면 어떻하나 하고 걱정했지만 그곳은 가로등이 빽빽하게 설치되어 있었기에 주행에 무리가 없었다. 어떻게 된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한산해지고 깨끗해졌다. 보통은 들어가면 갈수록 복잡해지고 더러워졌던 것. 아무리 못산다고는 하지만 10억의 나라 수도라 깨끗하게 정비되었을 것이다.
말도 안되게 큰 몇몇 빌딩과 초호화 특급호텔을 지나 얼키고 설킨 도로를 겨우겨우 지나 고급 상점들이 밀집되어있는 코넛플레이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그전까지 거의 볼 수 없었던 외국계 음식점, ‘맥도날드’, ‘KFC’, ‘피자헛’ 등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도 비싸 꺼려지는(나에게) ‘TGI’ 까지 있었다. 뿐만아니라 명품 시계점, 나이키, 리복 등 고급 스포츠 상점 등 도저히 내가 보아왔던 인도사람들과는 괴리감이 상당한 가게들이었다.
놀라움에 기가 막혔던 것을 뒤로한 채, 로터리식의 도로를 한참을 돌아 여행자들이 많이 모여드는 빠하르간지에 도착했다. 역시나 중심에는 발달했지만 조금만 벗어나니 비교적 다른 도시들과 비슷했다.
‘코넛플레이스’ 는 상점이 밀집된 곳이다. 동심원 작은 것 큰 것 두개가 로터리 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동심원 사이에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고 큰 원 바깥에 또 밀집되어있다. 그러니까 이 큰 상가가 애초부터 계획되어 건설된 것이다. 특히나 중심원에는 잔디밭과 분수대, 지하철 역으로 이루어진 ‘중앙공원’이 있다. 한국과는 다르게 잔디밭에 누구나 들어가 앉아쉴 수 있다. ‘들어가지마시오’라는 문구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따뜻하거나(겨울) 무지더워서(여름) 잔디를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잔디가 잘 자라 그러는 것 같았다.
비싼 가게에도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다. 영화관도 무려 150루피나 하는데 관람하는 사람이 많았다. (보통은 50루피 안팎) 비싼 음식점도 마찬가지였고, 특히나 외국계 패스트 푸드점에는 발붙일 틈이 없을 정도였다. 또, 돗자리를 가져와 잔디밭 여기저기서 앉아 이야기하고 노는 가족들, 연인들을 보자니 여기 사람들은 한국사람들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다가 정신적인 여유는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듯 했다.
‘헬로~ 프렌드~’, ‘룸??’, ‘달링~’ 하며 귀찮게 쫓아오던 인도인들은 다 어디갔는지 외국인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러니 오히려 내가 말한번 걸어볼까도 생각했다. 역시나 대도시, 타인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이 좋은 것인지 반대가 좋은 것인지, 헷갈리는 문제긴 했지만 어쨌든 그들과 함께 여유를 즐길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첫번째 관광지는 ‘쿠뜨브 미나르’. 인도 영화 ‘빠나’의 첫번째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곳이다. 이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우와 저긴 어디고, 진짜 좋네.’ 했었다. 무슨 아주오래된 유적지 였다. 멀쩡하지 않아 좀 더 고풍스런 느낌을 낸다고 해야하나… 많이 파괴되어 지금은 ‘쿠뜨브 미나르’라고 하는 약 73m에 이르는 고대 탑만이 거의 멀쩡하고 나머지는 멀쩡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갔기에 한참을 헤메고 헤메어 도착했다. 입장료가 거금 250루피였기에 잠시 망설였지만,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라길래 들어가긴 했다. 분명 오래되고 멋진 건물들이라 뭔가 ‘삘’이 와야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말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아무래도 내가 그곳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연관이 되어있는 것도 아니라 그런 것 같았다.
힌두교인에 대한 이슬람교인의 승전기념탑인 ‘쿠뜨브 미나르’는 멋지긴 했다. 이슬람교인들의 지배열망이 저만큼 높았다는 것을 표현한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저 높은 것을 현대식 기술도 없는 그 옛날에 쌓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죽었을까’ 생각했다. 아무래도 여행이 장기화 되면서 그저그렇게 새로운 것은 감흥은 물론이고 즐거움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유적지를 돌아다닌 것도 아닌데, 또, 몇년씩 하는 여행자들에 비하면 1년도 못채운 ‘초짜’ 여행자인데,, 벌써부터 여행의 묘미를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을 꼭 봐야만 하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래도 ‘후마윤의 무덤’, ‘레드포트’ 등 델리에서 내세우는 유적지는 둘러보았다. ‘후마윤의 무덤’같은 경우는 볼만했다. 넓고 깨끗하고 단정한 정원과 어우러진 무덤?. 아그라의 타지마할은 너무 붐벼서 제대로 구경할 수가 없었지만, 여긴 너무 조용하여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레드포트는 밖에서 바라본 성이 다라는 사실을 안에 들어가서야 느꼈다. 내부에도 화려한 건물들이 몇몇 있긴 했지만, 관광지에 대해서 나태해질대로 나태해진 나에게 별다른 흥미를 주진 못했다.
그나마 델리 현대미술관이 나에게는 최고의 방문지였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특히 고인이 된 어떤작가의 회고전을 하고 있었는데, 그림들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아직까지는 식견이 좁아 제대로 느낄 수 없었지만, 지식없이 느끼는 감동만으로도 충분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