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되어 출발했다. 라체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에 서북쪽으로 아리지방과 파키스탄 카라코람으로 이어지는 길과 남쪽 초모랑마와 네팔로 이어지는 길의 갈림길을 만났다. 거기서 잠깐 고민을 했다. 최초의 계획대로 서부티벳을 통과하여 자전거 여행자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로 갈 것인가, 아니면 네팔로 갈 것인가. 카라코람 하이웨이로 넘어간다고 청두에서 버스를 타고 라싸로 간 것이었는데, 그 때 그 시기도 그곳을 넘기엔 다소 늦었고, 네팔과 인도가 마음을 많이 당겼다. 여론도 네팔로 가는 게 좋다 였다. 더더욱 티베트에서 중국인들이 활개치는 것이 보기싫어 더 이상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결국 최초의 계획이 틀어져 네팔로, 남쪽으로 향했다.
길은 곧장 오르막길로 이어졌다. 그곳 라체의 고도가 4050m가량 되었으니 조금 올라갔음에도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자전거 여행자 같은 경우에는 얌드록쵸 지점의 ‘카로라’를 이미 넘었으므로 다소 익숙해진 상태일 것인데,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살짝씩 넘는 언덕길은 있었지만 몇시간씩 올라가는 오르막은 처음. (물론 티베트에서) 시계의 고도계를 켜고 올라갔다. 사실,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4500m 가량 다다랐을 때부터 숨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아침운동으로 ‘숨을 크게 들어마시고~ 후~하고 내뱉으세요~’ 할 때처럼 숨을 쉬었다. 그 때부터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처음에는 이삼십분 걸음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츰 줄어들더니 나중엔 열걸음 걷고 쉬고, 열걸음 걷고 쉬고를 반복했다. 4800미터가 넘어섰을 때는 숨이 찬 것뿐만 아니라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라싸에서 여행업을 하는 사람이 ‘라싸에서 고산병을 적응하면 티베트 어디라도 괜찮다’고 조언해 주었는데, 그 순간만은 정말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가지고 있던 고산병 약을 먹어보고, 물을 많이도 마셔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되돌아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우주를 향해 뻗칠 때 사방이 탁 트인 정상이 나왔다. 길은 완만하게 고개를 넘고 있었는데, 아래에서 바라보는 그곳의 구름은 길과 맞닿아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넘었다는 기념이라도 하기위해 사진기를 겨우 꺼내 찍었지만, 사진을 찍는데 그토록 힘든 적은 없었다. 시계의 고도계는 5000m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바로 내려가야 했지만, 시간도 어중간하고 하늘 위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주는 그곳에서 수많은 별을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언제 그렇게 높은곳에서, 그렇게 맑은 곳에서 별을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야영을 하기로 결정했다. 텐트를 치고, 짐을 옮기고, 라면이라도 끓이려고 준비를 하려했다. 잠깐만 누웠다가 해야겠다고 하곤 자리를 깔고 등을 붙였다. 몸을 움직일 때는 몰랐던 나른함과 엄청난 두통이 한번에 몰려왔다. 금방까지 멀쩡했지만 바로 병자가 되어 시름시름 앓으며 힘든 밤을 보냈다. 그렇다. 배도 채우지 못하고, 별은 당연히 보지 못했고, 잠도 하나 자지 못했다. 두통으로 인해 악몽같은 영상이 가끔씩 나타났을 뿐. 새벽에 별도 보고 소변도 볼 겸 힘든 몸을 일으켜 텐트밖으로 나오긴 했었으나 구름이 짙게 끼어 별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겨우겨우 짐을 싸서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사실 너무나 아파 지나는 차량에게 부탁하려했었다. 하지만 고도가 4500m에 이르자 거짓말같이 아픈 몸은 말끔해졌다. 별이라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긴 했다. 그래도 다시 그 고생을 하라고 하면 꺼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