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삼겹살을 정말 좋아합니다. 돼지고기를 구워먹는다고 하면 머릿속엔 삼겹살이 떠오릅니다. 정말 맛있죠. 자글자글한 솥뚜껑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을 보고 있자면 먹고싶어 다리가 덜썩덜썩 하죠. (제가요.. ) 상추와 깻잎, 쌈장과 맛있는 김치와 함께 싸먹으면 음식이 튀어나오는 줄 알면서도 “와 맛있네!”라는 말을 꼭 합니다.(이것도..제가..)
가장 비싼 삼겹살, 다른 나라에서 안먹어서 우리가 먹는다?
이 맛있는 삼겹살을 언제부터 우리가 좋아했을까요? 몇 년 전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알쓸신잡에서 이야기를 한 말이 가장 유명하죠. 일본에 수출하고 남은 부위가 삼겹살이라서 삼겹살을 많이 먹게됐다는 얘길 했었죠. 또, 들리는 풍문으로 다른 나라에선 삼겹살을 잘 안먹어서 대거 우리나라로 수출한다고도 하죠.
요약하면 ‘일본사람이나 유럽사람들은 삼겹살을 안먹는다’는 겁니다. 여기에 참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걸 봤습니다. ‘맛이 없어서’, ‘껍데기라며 버리는 부위다’, ‘기름 덩어리다’ 등등 참 말이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뭔가 억울합니다. 정육점에서 삼겹살이 가장 비싸니까요. “아니 왜 다른 나라에서 싫어하고 안먹는다는데 왜 우리나라에선 비싼거야?”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아래에서 그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흑돼지도 키우면서 발골과 정육도 합니다. 그러면서 고기도 많이 먹게 되었는데요. 삼겹살 먹을 때마다 “왜?”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왜 안먹는다는거지?”, “이 맛있는 고기를 먹으면서 억울한 느낌 뭐지?” 이런 질문 속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며칠 전에 머릿속에서 반짝 했습니다. 뭐, 저의 주장입니다. ^^
돼지고기만 먹으면 배탈이 났다던 아버지, 우리에겐 ‘돼지고기문화’가 없었다.
온 가족이 돼지고기를 구워먹던 어느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아빠 어릴때 잔칫집 갔다가 돼지고기 먹고 배탈나서 죽을 뻔 했다이가.” 살아계셨다면 83세인 아버지는 어릴 적에는 고기를 1년에 한 번이나 먹을까 말까했답니다. 그 해는 한 번 먹은 고기가 바로 돼지고기였던 셈이죠.
몇몇 분들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어르신들 말씀 들어보면, 옛날(어르신 어릴 적)에는 돼지 잡으면 모든 부위 다 함께 삶아서 먹었다고 하죠. 그리고 저희 아버지처럼 배탈이 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죠?
이 일화는 우리나라에는 돼지고기를 먹는 문화가 (거의)없었다는 걸 반증합니다. 최소한 일반 서민(농민)들에게는 더 없었죠. 따지고 보면, 정착생활을 하기 전의 인간들은 사냥을 통해 여러 동물을 잡았고, 기본적으로 구워먹었습니다. 고기를 먹는 문화가 계속 이어지고 남아있었다면 삶기보다 구워먹었을 겁니다.
돼지는 소고기보다 빨리 상합니다. 1년에 몇 번 잡을까말까 한 돼지, 전문적으로 잡는 사람도 드물었을 겁니다. 아마 시간도 오래걸렸겠죠. 여름철에는 대번에 변해버리죠. 이걸 몰랐던 겁니다. 신선한 상태에서는 삶지않고 생으로 먹어도 (기생충에 감염될 지언정) 배탈은 안납니다. 그 때 그곳에 모인사람이 무지해서? 몰라서? 아닐겁니다. 젊은 세대 빼고, 중장년 세대 여성분께 김치담그는 법 물어보세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죠.
‘고기문화’가 있는 사람들은 고기를 잡으면 바로 소금에 절이고 훈연했다.
꼭 서양 뿐만이 아니라 고기를 먹는 문화가 남아있는 곳에서는 고기를 잘 알았습니다. 돼지를 잡으면 소금에 절이는 것은 그렇게 하고, 연기를 쐬어 보관하는 것은 또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햄’이 바로 고기를 절이고 훈연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하면 맛은 둘째치고 오랫동안 보관하며 조금씩 먹을 수 있습니다. 소금과 연기 모두 고기의 방부역할에 탁월한 작용을 했습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그런 기술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동안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 결과죠. 우리 김치 담그는 것처럼 마을에 어디 기술자가 있어서 하는게 아니라 집집마다 ‘그냥 하는 일’이었죠.
한국인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데 왜 우리에겐 (먼)조상들의 ‘고기문화’가 사라졌을까요? 제 생각엔 농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농사가 배부를 만큼은 잘 되니 굳이 사육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고려시대나 가까운 조선시대에도 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마을에 남아있는 ‘고기문화’라는 것이 도무지 고기를 먹던 사람들의 행동은 아닌 것 같거든요.
옛날 돼지에는 삼겹살이 거의 없었다.
사육과 교배의 기술이 부족했던 시기의 돼지들은 삼겹살 형성이 잘 안되었다고 합니다. 삼겹살은 갈비살 바깥 쪽에 생긴 살(근육과 지방)인데요. 그 쪽에 살이 그렇게 두껍게 찌는 건 돼지라고 해도 자연스러운 건 아니었을겁니다. 아마도 그 때문에 두꺼운 껍질처럼 여기고 버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말이 그렇지 버리진 않았을 겁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돼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요리해 먹었으니까요. 일례로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햄 중에 ‘판체타’라고 있습니다. 삼겹살로 만든 햄인데요. 돌돌 말려져있는 게 특징입니다. 현대의 100kg도 넘는 돼지의 삼겹살을 돌돌만다? 말이 안되죠. 삼겹살이 얇기 때문에 말아서 햄을 만든 것 같습니다.
모든 부위를 구워먹어보면, 삼겹살이 최고.
한국인들은 다양한 이유로 ‘고기문화’가 이어지지 못했던 것 같구요. 식민지가 끝나고, 한국전쟁도 끝난 뒤 경제성장의 발판이 마련되고 살림살이가 나아지던 7~80년대부터 거의 새롭게 생기기 시작했다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쇠고기와는 다르게 돼지는 부위별로 나누어 부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최근(8~90년대)에야 부위별로 명칭도 붙이고 했다네요.
삼겹살을 구워먹기 시작한 건 개성사람들에 의해서라고 하는데요. 또, 누군가의 장사속으로 시작했다고도 하구요. 설령 누군가의 의지대로, 삼겹살을 퍼트렸어도 그게 맛이 없었다면 진작에 끝이 났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맛있기 때문에 퍼질 대로 퍼져서 한국인에게도 삼겹살이 최고의 돼지고기가 됐습니다. 부위별 명칭도 없어 대충 통으로 삶아서 먹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화가 생기게 된겁니다.
삼겹살 구이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 더이상 비하하지 말자.
유튜브에 ‘외국인 삼겹살 반응’ 이라고 쳐보면 삼겹살을 먹고 놀란 반응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이렇게 단순한 요리?에 그렇게 반응한다는 거에 우린 더 놀라죠. 아주 단순하지만 독특한 삼겹살인 셈이죠. 어떻게 보면 돼지고기에 대한 ‘색안경’이 없다보니 삼겹살도 구워먹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삼겹살을 더이상 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안먹어서 버리는 거라 수입한다는 둥 그런 얘기 말이죠.
다른 이유 없습니다. 덴마크, 독일, 스페인, 칠레, 미국산 삼겹살이 많이 수입되는 이유는 우리가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