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스트 셀러가 된 책들을 피하는 편이다. 상업성을 띠는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몇해 전, 눈에 띤 책 중 <무탄트 메시지>라는 것도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일부러 외면했다. 왠지 ‘원주민’들의 삶을 곡해하여 써놓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북미 인디언의 사상을 추종하는 나로서 ‘원주민’의 삶이 야만적으로 표현되는 걸 극히 꺼린다.
얼마 전, 주변에 사는 지인이 <무탄트 메시지>를 추천해 주었다. 그 때는 건성으로 들었다가 마침 중고서점에 책이 있길래 얼른 구입했다. 그리고 읽었다. 다 읽고 난 소감을 간단히 말하자면,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이나 소로우의 <월든>,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같은 명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책이다. 필독서란 얘기다.
특징적인 점은, 다른 책들은 ‘인공적인 사람’이 자연과의 조화를 찾으려 하는 이야기지만, <무탄트 메시지>는 자연사람, 즉 호주의 원주민 ‘참사람 부족’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어떠한 정신세계와 생활방식을 누렸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최신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담겨져 있다.
말로 모건이라는 분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미국의 자연치료 의사다. 거의 운명적인 계기로 호주에 일을 하러 가게되고 또한 운명적으로 호주의 원주민 청년들을 위한 사업을 벌이게 된다. 다시 그 일을 통해 그녀는 놀라운 여행을 하게 된다.
놀라운 여행이란, 원주민들로부터 ‘점심초대’를 받은자리에서 곧장 옷을 몽땅 벗고 천으로 몸으로 감싸고, 식량도 물도 아무것도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원주민들을 따라 세달 반동안 그것도 맨발로 사막을 도보 횡단 한 것을 말한다. 그녀를 초대한 원주민이 바로 ‘참사람 부족’이다.
그녀는 ‘놀라운 여행’에서 참사람 부족의 기적적인 모습을 관찰하게 된다. 몇가지 중 두가지만 소개하자면, 첫째, 참사람 부족은 마음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 대화가 흔히 말하는 ‘마음의 대화’가 아니라 직접 의사소통을 하는 ‘텔레파시’다. 읽는 나도 믿기가 힘든데 직접 그 광경을 지켜본 저자는 어땠을까?
‘우리가 몇 시간쯤 걸었을 때였다. 갑자기 부족의 어른이 걸음을 멈추고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모두가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천천히 흔들었다. …중략… 오타가 내게로 몸을 돌리더니, 아침에 우리보다 일찍 떠난 젊은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오는 중이라고 말했다. 자기가 캥거루 한마리를 잡았는데 꼬리를 잘라도 되느냐고 묻고 있다는 것이었다. …중략… 내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30킬로미터나 떨어진 사람과 메시지가 오가고 있었다.’
일행은 그 자리에서 여행을 중단하고 캥거루를 요리할 준비를 한다. 만약 텔레파시 내용이 틀리거나 했다면 그런 확신을 없었을 것이다. 참사람 부족은 도시에서 공중전화를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텔레파시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고 변명한다.
텔레파시가 가능한 이유는 거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숨길 것이 없으니 마음을 열어놓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문자와 언어의 차이가 있더라도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그들은 돌고래와도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했다고 말했다.
두번째는 부러진 다리를 손도 대지 않고 치료한 내용이다. ‘위대한 돌 수집가’라는 사람이 6m나 되는 절벽에서 떨어져 정강이뼈가 부러졌다. 부러진 뼈가 피부 위로 5cm나 튀어나와 있을 정도의 중상이었다. 치료를 진행한 사람은 부족 내 ‘주술사’와 ‘치료사’ 였는데, 손을 상처 위 허공에서 왔다갔다 하거나 ‘기도하듯 중얼거리’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중얼거림은 어느덧 찬양의 노래로 바뀌었다. 세 사람 모두 제각기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 한 순간 그들은 일제히 목소리를 높여 무어라고 외쳤다. 그들이 부러진 다리를 잡아당기는 시술을 한 것이 분명했지만, 실제로 잡아당기는 장면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참사람 부족 치료사는 이 상처에다 여자들의 생리혈 등을 삭힌? 물질을 발랐다. 다리가 부러졌던 사람은 바로 다음날 바로 일어나 걸었다. 목발도 없고, 절룩거림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쓰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을거라고 걱정했다. 내가 생각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아니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자연과 동떨어져 인공적인 삶에 익숙한 사람들은 SF소설에나 나옴직한 그런 능력을, 그것도 동시대에 존재하는데다 ‘원시적’인 사람들이 그랬다니 어찌 믿겠나.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이런 ‘기적적’인 내용이 아니다. 참사람 부족이 자연과 더불어서 살아가는 방식이나 철학이 중심이다. 무탄트(‘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존재’로 참사람 부족이 현대인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들에게 자신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저자(말로 모건)를 초청한 것이다. 저자도 처음에는 얼떨결에 따라갔지만 도중에는 책임감을 느끼며 세상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릴까 고민하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나는 이 참사람 부족을 단순히 ‘원주민’으로 표현하기에 매우매우 부족하다고 느꼈다.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철학자들, 생명∙생태∙환경∙평화 운동가들, 종교인들, 과학자들, NGO들, 각종 전문가들이 골머리를 쓰고 있지만 이 참사람 부족은 무지막지하게 높은 ‘도’의 수준으로 그런 문제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참사람 부족이 말로 모건에게 전한 내용 중엔 붓다의 가르침과 다를바 없는 것들도 많았다. 분명 참사람 부족이 호주에서 수만년간 사는동안 아시아 대륙과는 종교적 교류가 없었을 것이다. ‘진리는 하나다’ 또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빈말이 아님을 다시금 느꼈다. 내가 그들이 ‘성자’라고 느끼게 된 내용들을 몇가지만 추려보았다.
‘참사람 부족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모든 것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이 우주 속에 일시적인 변덕이나 우연 또는 무의미한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며, 아직 인간에게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신비가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참사람 부족은 목소리란 말을 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말은 마음이나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목소리를 통해 말을 하면 사소하고 불필요한 대화에 빠져들기 쉬우며, 정신적인 대화로부터는 아득히 멀어진다.’
참사람 부족이 말로 모건의 생일축하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왜 그렇게 하죠? 축하란 무엇인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하는 건데, 나이를 먹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나이를 먹는 데는 아무 노력도 들지 않아요. 나이는 그냥 저절로 먹는 겁니다” 이 말에 말로 모건이 되묻는다. “나이 먹는 걸 축하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무엇을 축하하죠?” 그리고 참사람 부족의 대답. “나아지는 걸 축하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파티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지요.”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일부 수정했어요~ – 채색)
‘나의 길동무가 된 참사람들은 우리가 걷고 있는 대지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그들은 그 당이 우리보다 앞서 살다간 조상들의 유골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세상 만물은 죽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것으로 변화할 뿐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참사람 부족이 보기에, 무탄트들(현대인)이 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좀처럼 정의하지 못하는 까닭은 모습에 집착하기 때문이었다. 참사람 부족에 따르면, 신은 크기도 모양도 무게도 없다. 신은 본질, 창조성, 순수, 사랑, 한없는 에너지이다.’
등등등등 책에는 주옥같은 내용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신비롭고, 신비로우며, 신비롭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참사람 부족은 말로 모건에게 무거운 메시지를 남기고서 ‘지구에서 떠나기’로 결정했다. 부족의 어른은 “세상 사람들은 달라졌고, 땅의 영혼을 배반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댔다. 또, “더 이상 영혼에게 인간의 모습을 주어 이곳에서 살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참사람 부족이 ‘지구를 떠나는’ 이유를 알기쉽게 간단히 정리하자면 ‘인간이 자연을 망쳤고, 더이상 인간의 대를 잇는 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이 책은 1990년에 처음 출판되었으니 저자가 참사람 부족과 여행한 시기는 1980년대 말 경이다. 그 때만 해도 자연이 지금만큼은 파괴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참사람 부족이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건 그만큼 민감했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자연과 둘이 아니었던 그들로써 ‘땅의 영혼을 배반한 죄책감’은 상당히 컸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떠나기 전에 말로 모건이라는 사람에게 메세지를 전해 책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도록 한 것이고, 아쉬운 것은 여행이 끝난지 30년이 넘었으므로 대다수 참사람 부족은 이미 지구를 떠났을 거라는 점이다.
이런 책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그들 중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그들의 메시지를 받은 무탄트들이 또다른 ‘참사람 부족’이 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메시지를 여러 경로를 통해 받아왔고, 조금씩 실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블로그의 글을 읽고 또 무탄트 메시지를 읽고, 함께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ps. 무탄트 메시지가 ‘가짜’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었네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저자인 말로 모건이 실제 경험한 이야기가 맞다고 하고요. 책의 국내 출판사인 정신세계사에서 직접 이메일로 저자에게 진위를 묻기도 했답니다. ‘가짜’라는 루머에 속지 마시고 충분히 감동을 느끼고 행동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