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삶을 꿈꾸던 우리 부부는 아기가 생기면서 출산을 스스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른 모든 동물들은 스스로 출산을 하지만 오직 사람만이 병원에서 출산을 하는데 의문을 던졌죠. 출산에 대한 공부와 깊은 고민 끝에 결국 실행했습니다.
하하농장의 첫번째 ‘하’의 주인공 모하는 2013년 12월 17일에 작은 시골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건강하게 낳았고, 9살인 지금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다큐를 만들고 싶어서 영상도 찍고, 글도 써 놓았으나 결국 제 때 쓰지 못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서야 글을 꺼내 놓습니다. (그 때 써 놓은 글을 아주 살짝만 수정했어요)
글 목록
기분좋았던 테스터 구입
시장엘 다녀오는 길이었다. 좁은 2차선 길에 차를 바짝 붙여서 세웠다. 건너편에는 약국이 있었다. 유하는 차 문을 열고 훌쩍 뛰어내려선 가벼운 걸음으로 약국엘 다녀왔다. 몇 번째 임신테스터를 사는 건지 모르겠다. 생리가 늦어질 때마다 테스터를 샀고, 매번 음성이 나왔었다.
아무래도 주기가 불규칙한 것 같았다. 손이 큰 유하는 살 때마다 두 개씩 사는 바람에 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나가는 것도 아까웠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임신이라면 그저 좋아하면 되는거 아닌가’라는 말이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내가 임신하는 게 아니니까.
이번에는 느낌이 좀 달랐다. 실은 이번에는 내가 테스터를 어서 사보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확신이 있었던 게 가장 큰 이유고, 이제는 아기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결혼식을 막 일주일 전에 치뤘기에 대외적으로도 임신은 매우 기쁜 일임이 분명했다.
결혼 전 큰누나는 진담으로 “요즘에는 임신이 최고의 혼수다더라”며 은근 임신을 압박하기도 했지만 임신테스터를 살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었다. 왠지 범죄같았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그야말로 고귀한 행위임에도.
집에 가는 동안 뜬금없이 기분이 좋았다. 이전에 임신테스터를 샀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마치 임신이 확실해서 내가 곧 아빠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빠가 되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을 해봤다. 아기를 끌어안고 있는 상상? 아이와 공놀이를 하는 상상? 아무래도 모습은 그릴 수 있었지만 기분좋다 이외 느낌은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았다.
두 개의 선
집에 도착하자마자 유하는 화장실로 직행했다. 이번이 진짜 임신이라면 우리 아기의 존재를 처음 알게되는 순간이어서 카메라 동영상 녹화버튼을 누르고는 화장실 앞에서 기다렸다. 임신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아기를 낳을 때까지, 아기가 커가는 모습들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었다.
물 소리가 들렸고, 나는 긴장했다. 문이 열리고 굳은 표정의 유하가 나왔다. 카메라 때문이었다. 기뻐하는 모습을 찍고 싶었는데 반대의 모습이 찍혀버렸다. 어떻게 됐냐고 다그쳤지만 탁자에 툭 던져놓고는 터벅걸음으로 거실로 걸어갔다. 임신테스터에는 두 줄이 매우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임신이었다! 나는 큰 소리로 “이거 임신맞제?”, 유하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몰라!” 유하도 금방 기분이 풀어지긴 했지만 테스터의 반응은 잠깐동안 서로의 기분이 반대쪽 양 극단에 놓이게 했다. 함께 소리지르며 방방 날뛰고 싶었지만 기분을 맞춰주어야만 했다.
그녀의 실망스런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연말로 미뤄놓고 있었다. 수년간 미뤄왔던 인도여행을 결혼을 기념해 떠나기로 한 것이다. 아기가 4월에 생겼으니 12월에 태어난다. 봄 부터 여름까지는 농번기여서 어디를 간다는 생각을 하면 안되고, 가을부터는 배가 많이 부른 상태여서 갈 수가 없다. 겨울에는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어느정도 클 때 까지는 여행은 접어야 한다. 나는 여행을 해볼만큼 해 본 처지라 아쉬운 점이 별로 없었지만 유하는 20대 초에 인도배낭여행과 몇 차례 짧은 해외여행을 한 것이 거의 다였다. 테스터에 찍힌 선명한 두개의 선을 보며 그 짧은 시간동안 여행에 대한 생각을 한 것이다.
나는 유하의 실망스런 기분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불뚝불뚝거렸다. 미안한 마음도 전혀없었다. “나도 이제 아빠다!!”
분위기가 어색했던 산부인과 진료
임신이 확실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절차가 하나 더 남아있었다. 테스터가 대충 다 맞다고 해도 그 중 오류가 나는 것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임신은 병이 아니니까’ 병원에는 가지 않으려 했었는데 초기 진단은 받기로 했다. 임신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조심을 하고 돌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유하는 꼭 여의사가 하는 산부인과를 가고 싶어했다. 임신 초기에는 질초음파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능글맞은 아저씨 의사가 걸린다면 나도 난감할 것 같다. 그런 산부인과는 가까운 영주나 안동에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확인이 안되고. 마침 주말에 지인의 결혼식이 원주에 있어서 원주의 산부인과를 검색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결혼식에 가는 김에 들리는 산부인과였지만 상황이 역전되어 산부인과 방문이 원주행의 주 목적이 돼 버렸다. 원주로 가는 두어시간 동안 휘파람을 불거나 노래를 불렀다. 기분이 좋을 때는 나도 모르게 휘파람이 나온다. 콧노래 대신.
찾아간 산부인과는 분위기가 애매했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하나같이 아무말이 없었다. 혼자 온 사람도, 일행과 함께있는 사람도. 기쁜 마음으로 찾아간 나와는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기 힘든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 들뜨고 좋은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한 쪽 벽면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액정티비를 보며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유하에게 “저거바바 저거바바”이러면서 재밌는 장면을 공유하고자 애썼다. 평소에 티비를 보지 않으니 그럴만도 했다. 유하는 이런 내가 부담스러웠는지 팔꿈치로 툭툭치며 눈쌀을 찌푸렸다. ‘분위기 좀 파악해’라는 신호였다.
표정이 무거운 몇몇 분들의 진료를 마치자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카운터에서는 “송유하님, 들어가세요”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같이 일어나 쭈뼛쭈뼛하며 간호사에게 “같이 들어가도 돼요? 애기 아빤데…”하니 “예 그럼요 들어가셔도 됩니다”라는 시원한 답변이 돌아왔다. ‘애기 아빠’라는 단어가 아직 어색했다.
'콩알'에서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다
유하가 들어가고 난 뒤 금방 따라들어간 것임에도 벌써 배를 까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끈적끈적한 물질을 배에 묻히고 있는 의사선생님께 영상을 찍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는 녹화버튼을 눌렀다. 예상과 달리 질초음파는 하지 않았고, 바로 배 위에 초음파 리더?기를 얹져 놓았다. 어두운 진료실의 분위기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아주 빠른 박자의 ‘꿍쾅’소리에 놀라야했다.
“애기 심장소리 들리시죠? 검은 부분에 애기가 있어요. 그 안에 하얀 점 있죠?” 검은 부분에 커서를 갖다 대고는 둘레를 쟀다. “보자… 크기가 1.2센치 되네요. 이 정도면 7주 3일이네요. 예정일은 12월 11일, 일주일은 왔다갔다 해요.” 의사선생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고, 심장박동소라와 콩알 모양의 아기 모습이 내 눈에 가득찼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결과에 놀라고 또 놀랐다. 예상했던 건 그저 ‘임신이다’, ‘임신이 아니다’를 알려주는, 작은 막대에 두 줄이 선명하게 나오는 것보다는 확살한 판단이었다. 아기의 존재를 두 눈으로, 두 귀로 확인하고 나니 ‘앗싸!!’나 ‘오예~!’같은 추임새를 넣어서 춤도추고 방방 뛰고싶었다. 그곳 분위기만 조금 좋았다면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 아기 가졌어요~”라는 말을 큰 소리로 남기고 유하 손을 맞잡고 부루스정도는 추고 나왔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