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양돈’ 방식으로 흑돼지 키우기. 바뀌길 원한다면 우리가 바꾸자.

며칠 전 돼지들이 또 생매장당했다. 사람들은 다 안다. 사육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계속 되풀이 된다는 것. 2008년 광우병 사태는 내게도 그렇고 많은 이들에게도 ‘가축사육’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현대의 축산업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나서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채식주의’로 살겠다 선언했었다.

그 전까지 고기에 환장했기에 주변인들의 반응은 황당 그 자체였다. “사냥이 허용된다면 나는 맨날 사냥하러 다닐 거다. 고기 좋아하니까. 그런데 지금의 방식으로 생산된 고기는 거부하겠다.”는 게 비공식 입장이었다.

축산환경은 바뀐 게 하나 없었지만 3여년 어설프게 채식을 한 뒤 다시 고기를 먹었다. 입 안으로는 죄책감도 함께 들어왔다. 늘 게운치 못했다. 생협에서 판매하는 ‘무항생제’고기도 알고보면 아주 조금 다를 뿐 ‘공장식’ 축사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우리나라 법적 기준으로 60kg 이상의 돼지들을 1평의 공간에서 4마리 정도 키우도록 돼 있다. 4계절 내내 균질한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창을 없애 바람과 햇볕을 막는다. 냉난방 시설을 통해 인위적으로 온도를 조절한다. 청결을 위해 물청소가 가능한 콘크리트 (또는 플라스틱) 바닥으로 돼 있다. 태어난 뒤로부터 각종 주사에 시달리고, 사료 안에는 크기를 빨리 키우기 위한 약제가 들어가 있다. 주먹만하게 태어난 아기돼지는 불과 6개월만에 100kg에 달하는 거구가 된다. 비교적 야생돼지와 가까운 흑돼지는 12개월이 지나야 겨우 100kg이 된다는 걸 감안한다면 너무 빠른 성장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4개월 반만에 100kg으로 만들어 출하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그런 기술들은 오직 더 많은 이익을 내는 목표를 가질 뿐 돼지의 건강이나 그 돼지를 먹는 사람의 건강은 생각치 않는다.

광우병, 구제역 사태를 겪으면서도 문제의 핵심에는 접근하지 않는다. 항생제를 늘리고, 예방접종을 늘리고, 뭐든 늘리려 할 뿐 줄이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육두수를 줄이고, 창을 열고, 햇볕을 축사 내로 들이면, 그러니까 돼지들을 자연에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다만 성장은 느리고 생산성은 낮아지겠지만 돼지도 건강하고 사람도 건강할 수 있을 테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그렇지만 이런 ‘비효율적’ 방식은 사양한다. 오히려 자연에 맡겨두는 것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한다. 돼지 수백만 마리를 생매장시키는 어마어마한 상황 속에서도 자연보다 ‘과학’이 최고라고 외친다.

무엇보다도 왜 공장식 축산이 계속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제점이 드러나면 방식을 고쳐야 하는 것이 맞는데 되려 악화가 되는 모양새다. 손가락질을 해 봐야 바뀌는 건 없어보였다. 이 문제는 농사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살충제, 제초제, 화학비료 등 각종 농약들이 자연을 해치고 건강을 해치는 건 이제 세상사람들 다 알지만 바뀌지 않는다.

농사를 몇 년간 지어보니, 관행농사는 자연에 맡겨 짓는 농사보다 몇 배나 많은 생산을 해낸다는 걸 알게되었다. 지금의 인구밀도에서는 어쩔 수 없는 농사방식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것도 밖에서 바뀌어라 바뀌어라 말을 해도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그렇게 외치는 사람이 해야한다. 그게 가장 빠르게 바꾸는 방법이라는 걸 지금은 안다.

겨울철, 볏짚을 이불처럼, 놀잇감으로 놀기도 하고, 먹기도 한다. – 팜핑농장

봉화에 와서 ‘자연양돈’이라는 걸 처음 들었다. 일반적인 관행돈사는 창이 없는 무창돈사에다 돼지들을 비좁게 넣고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돼지들을 사육한다. 자연양돈은 축사 내로 최대한 자연을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도 들고, 흙바닥으로 된 넓은 공간에 돼지들을 풀어놓는다.

돼지들은 습성대로 땅을 파기도 하고, 흙을 먹기도 했다. 사료는 공장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그랬듯 농사 부산물들을 모아 발효시켜 돼지들을 먹였다. 여름철에는 푸릇한 청초를 베어다 주었고, 겨울철에는 볏짚을 먹고, 베고, 놀도록 넣어주었다. 이렇게 자란 돼지들은 (갑자기 먹는 얘기해서 돼지들에게 대단히 미안하지만 ㅠㅠ) 고기 모양도 달랐고, 맛도 달랐다. 구울 때 나온 돼지기름은 며칠이 지나도 하얗게 굳지 않고 그대로 였다. 고기를 좋아하는 나지만 고기를 과식하면 그날 밤은 힘들었는데, 자연양돈 돼지고기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너무 편했다.

처음에는 그냥 ‘소비자’로써 자연양돈을 받아들였다. 주로 생고기가 필요할 때 구입했다. 우리는 자연양돈에 빠져들었다. 자연양돈을 알려준, 자연양돈을 하고 있는 팜핑농장은 비슷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친한이웃관계가 되었고, 더욱 더 자연양돈에 가까워졌다.

자연양돈으로 된 고기를 먹으면 먹을 수록 관행양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커졌다. 우연히 관행양돈 돼지고기를 구워먹게 될라치면, 고기를 좋아하는 나도 젓가락을 가져가기가 부담스러웠다. (이제는)비정상적인 식감, 향, 맛 등이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불과 몇 달을 살다가 가는 돼지들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 살아있는 동안 만이라도 고마워해야 하고, 편히 있다가 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솔직히 사람들의 건강은 둘째다. 항생제가 든 고기라도 감사해하며 먹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들은 목숨을 내 주었다…

팜핑농장의 모돈. 넓은 공간에서 편안히 지낸다.

앞에서 말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그 일을 해야한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채식경험이 3~4년씩 되는, 육식에 고민이 많았던 사람이다. 현대의 축산업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었고, 바뀌어야 한다고 외쳤었다. 식사자리에서 주변사람들에게 무안을 주었던 적도 아주 많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는 채식을 해야한다고도 말한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기를 낳고, 키우며 식탁에 고기반찬이 꾸준히 오르는 걸 보며 이런 식은 곤란하다고 대화하길 수년, 얼마전 결정했다. 마침 자연양돈을 하는 분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으니 이런 좋은 기회가 없다. 바뀌길 원한다면 우리가 바꾸자.

하하농장의 논을 바꾸어 축사를 지을 예정이다. 규모는 200여평 정도. 지붕을 높게해서 통풍이 잘되게 하고, 지붕의 반을 반투명 재질로 써서 햇볕이 잘 들도록 만들고, 바닥은 60cm 이상의 깊이로 톱밥+흙+미생물 등으로 채울 것이다. 돼지들이 널널하게 지낼 수 있도록 1평당 1마리 미만으로 관리할 계획이다.(종돈, 모돈, 자돈, 육성돈, 비육돈 별 차이는 있다.) 사료들은 주변에서 나오는 농사부산물을 발효시켜 주고, 매일같이 풀을 베어다 줄 것이다. 사육환경을 자연과 똑같이 만들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최선을 다해 끌어들이는 것이 목표다.

1년 정도 지나면 출하가 될 텐데, 그 1년 동안은 ‘동물복지’의 원칙으로 운영한다. 원칙은 1. 배고픔과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 2. 환경이나 신체적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3. 고통, 질병 또는 상해로부터의 자유 4. 정상적인 습성을 표현할 자유 5. 두려움과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등이다.

육식을 단칼에 끊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겠지만, 세상 사람들 대부분 불가능한 일이다. 돼지를 먹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자란 돼지가 서로에게 조금이나마 나을 것이다.

ps. ‘자연양돈’ 단어의 뉘앙스 상 자연에 돼지를 풀어 키울 것 같지만, 축사 안으로 자연을 최대한 끌어오는 게 ‘자연양돈’이다. ‘사육’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숲에 풀어키우는 방식은 거의 불가능한 방식이다. 만약 사육을 위해 자연에 풀어둔다면 되려 환경파괴가 될 게 뻔하다. 야생돼지들의 행동반경은 2km²나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EU 유기축산 기준으로 방목해 키운다면 3000평 당 14마리 이내로 키워야 한다. 게다가 땅이 좁은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그 만큼 풀어놓았을 때 필요한 면적은 상상이상이다. 온 나라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육식을 줄이지 않는다면 어려울 것이다.

이 글은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이상*

    저두 젊은나이일 적에 돼지를 키워본 적이 있네요.
    그 시절에는 뱀두 잡아주고 개구리도 삶아주고 키웠지요.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2. 추경*

    두분의 귀농이야기부터 여기까지 흘러 들어오는데 오전시간이 다 흘렀습니다!
    직접 돼지를 키우기로 하신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 친구 레베카가 생각이 나서 글을 남깁니다.
    소고기요리 점심을 시킨뒤 테이블에 배달된 음식을 앞에 두고 도살당시 비참하게 죽어간 소의 에너지가 느껴진다며 눈물을 터트리던 그녀였죠.^^
    https://www.hawkridgehomestead.com/about/

    적지 않은 분들이 ‘하하농장’을 실현하며 사시는 것에 감동하는 아침입니다!

    1. che***

      감사합니다. 저희 부부도 육식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네요. 한 때는 평생 채식만 하며 살 것처럼 굴기도 했었어요. 잘 할게요^^

  3. 박호*

    많이 힘드실 것 같은데, 꼭 성공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1. che***

      맞아요… 허가를 받는데 힘이 많이 드네요. 기존 축사들이 워낙 최악으로 해 놓은 탓이겠지요. 응원 감사합니다. ^^

  4. 최영*

    사장님, 부디 성공하시기 바랄게요… 응원합니다..^^*

    1. 김 성만

      응원 감사합니다~~ ^^

답글 남기기